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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공의 사랑과 공의지금까지 교회에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가르쳤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사랑이시지만 끝까지
사랑과 공의 사랑과 공의지금까지 교회에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가르쳤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사랑이시지만 끝까지
사랑과 공의지금까지 교회에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가르쳤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사랑이시지만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불 못의 진노와 심판이 따른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그 후손들을 죄악에서 건지시려고 말씀으로 아들 예수를 낳으셨다. 말씀으로 낳은 자녀는 성령으로 낳은 자녀와는 다르다. 아담을 만들 때는 흙과 성령으로 사람이 되게 하셨으나 예수님을 만드실 때는 로고스와  육신으로 성육신하게 하셨다. 성령의 사람과 말씀의 사람은 무엇이 다를까? 신학교에서 인간의 삼 요소는 영, 혼, 육이라고 가르쳤으나 나는 인간의 삼요소를 육체, 영혼, 말씀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본체와 말씀과 성령의 삼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본체가 가장 중요한 데 많은 성도들은 하나님은 본체가 없는 줄로 알고 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했으니 아마 본체가 없을 거라고 착각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육체를 지었다는 의미는 본체가 있고 말씀과 영이 있으시다는 뜻이다. 야곱은 하나님의 얼굴을 뵈었다고 했다. 창 32장 28. 그 사람이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과도 겨루어 이겼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겼으니, 이제 너의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30. 야곱은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뵈옵고도, 목숨이 이렇게 붙어 있구나" 하면서,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하였다. 사도 요한도 주님의 모습을 뵈었다.계 4장3. 거기에 앉아 계신 분은, 모습이 벽옥이나 홍옥과 같았습니다. 그 보좌의 둘레에는 계 22장 3.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도시 안에 있고, 그분의 종들이 그분을 예배하며,4. 하나님의 얼굴을 뵐 것입니다.  사 6장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나는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그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 차 있었다. 두번째로 중요한 역활을 하는 부분이 말씀인데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천지창조보다 더 위대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천지창조부터 인류의 역사는 시작된다.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지 않으셨다면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께서 판을 깔아주셨기 때문에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자녀가 태어나면 육체도 있고 영혼도 있지만 말은 할 수가 없다. 말을 못하는 어린 아기와 동물들은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인간의 삼 요소 중에 두 번째로 중요한 말씀이 없는 인간은 답답한 존재다.세 번째로는 영이시다. 하나님의 영은 창조 시에도 수면에 운행하셨다. 인간도 영혼이 떠나가면 죽는다고 한다. 죽으면 육체도 말씀도 움직이거나 말을 할 수가 없다. 인간은 영혼이 있다. 그러나 아담이 죄를 지으므로 영혼이 죽게 된다. 영혼이 죽어버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원래대로의 존재가 아니다. 육체만 있을 뿐 말씀도 없고 하나님의 영도 떠나고 없다. 그렇게 된 인간은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 그 속에 영과 말씀이 들어와 기거해야 비로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녀가 되는 것이다. 나는 말씀을 듣다 성령으로 거듭났다. 성령으로 거듭나자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다. 말씀을 먹고 인격이 자라는데 처음에는 부드러운 음식을 먹고 차차 딱딱한 음식을 먹게 된다. 말씀을 깊이 아는 자가 성인이 되고 어른 노릇을 하는 것이다.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녀도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수박 겉핥기식으로 부분적으로만 알기 때문에 온전한 사람이 될 수가 없다. 교회 오래 다닌다고 목사가 되는게  아니다. 목사도 부분적으로만 알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알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다 가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어떤 분은 구약을, 어떤 분은 신약을 연구하지만,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예수 사랑만 전하다 가는 분들이 많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은 서로 사랑하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 네 원수를 사랑하라.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를 사랑하라. 이 아가페 사랑은 막연한 말이 아닌 삶을 다 바쳐 따를 만한 말씀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십자가가 수평과 수직이 만나야 완성되는 것 같이 수평적인 엄마 같은 사랑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수직적인 아빠 같은  진노와 심판이 꼭 필요하다. 예수께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구약의  율법을 가르치는 바리새인, 율법학자들이 사랑은 안 가르치고 율법을 어기면 벌만 주고, 돌로 쳐 죽이거나, 또 전쟁에 나가 이방인들을 남녀노소 불문곡직하고 모조리 쳐 죽이라고 수직적 공의만 강조하여 성경을 왜곡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가장 구약적인 정치를 하는 나라는 이스라엘, 이란, 북한과 중국, 러시아 등이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이라는 단어가 필요 없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철저하게 응징한다. 특히 중국, 베트남, 북한은 일당 독재다. 반대하고 발목 잡는 야당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지도자가 잘못하면 누군가는 지적을 해야 하는데 지적하고 비판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간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여야가 있을까? 하나님의 나라에도 야당이 존재했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사탄이 야당 역할을 했었다. 하나님께 대적하는 그 무리들을 하늘에서 쫒아내셨고 하늘에는 평화가 도래했다. 며칠 전에 월드 뉴스를 보다 깜짝 놀랐다. 홍콩에서 야당이 당을 완전히 해체한다는 소식이었다. 한국, 미국도 야당을 해체 수준으로 약화시키지 않으면 발목잡기 때문에 통치가 불가하고 전 국민이 두 파로 나뉘어져 끝없이 싸워야 한다. 여야로 나뉘어 분쟁하면 망한다고 했으니 차라리 일당으로 가는 게 국력 소모가 적을 것 같다. 지금 한국은 내전이 일어나기 직전이다.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가 하루가 멀다 하고 광장에 모여서 큰소리로 외쳐 댄다. 하루도, 이틀도 아니고 싸우는 일에 지친다. 베트남이 일당독재 국가 중에서는 그나마 좀 온건하다. 국민끼리 싸우는 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여야는 한 가정과 같이 아빠(여당)가 부족한 부분을 아내(야당)가 보완하고 도와주는 역할 정도여야지 그 이상은 안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하나님의 대리자이신 현직 대통령을 야당이 체포하여 구치소에 가뒀다. 세상에 이런 패악질은 전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전무후무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악을 보고 방관하고 있으면 반드시 나비효과를 내서 미국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뉴스에 미국의 민주당 의원이 대통령을 체포해야 한다고 극단적인 선언을 했다. 나는 체포라는 말만 들어도 치가 떨리고 신경이 예민해지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말 다음에는 반드시 구속하라는 말이 바늘과 실처럼 따라오게 된다. 나는 반역법(국가 원수 모독죄)을 미국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본다. 연방 공무원, 국회의원, 앵커, 기자 등으로 국한하여 선포해 적용해 보고 필요하면 추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야  효과가 미미하지만 리더급들이 대통령을 흔들면 나라가 무질서 해지고 한번 기강이 무너져 다시 세우려면 많은 희생과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북한에서 지도자에게 체포 등 모독하는 말을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교화소나 수용소에 가뒀다가 총살시킨다. 대통령을 하나님처럼 경배하지는 못하더라도 죄인으로 몰아 모독하는 말을 하는 범죄자들을 절대로 용서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체포해서 감옥에 가두고 금융치료를 해서 남은 자들이 다시는 그런 말을 못하도록 일벌백계해야 한다. 말보다 중요한 게 없다.하나님 나라 구성원들의 찬양계 15장4. 주님, 누가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지 않겠습니까? 주님만이 홀로 거룩하십니다. 모든 민족이 주님 앞으로 와서 경배할 것입니다. 사탄의 2인자 짐승의 모독계 13장5. 그 짐승은 큰소리를 치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입을 받고6. 그 짐승은 입을 열어서 하나님을 모독하였으니,인간은 말을 통해 그의 인격을 드러낸다. 대통령을 찬양하든 내란 수괴라고 모독하든 자유이나 경배와 찬양이 아닌 모독은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찬양의 말로 화목을 이룩하지만, 모독하는 말은 국가의 기강이 무너져 내린다. 국가 원수에 대한 찬양과 경배는 사랑이지만 모독하는 자에게는 진노와 심판을 내려 공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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